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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베드로와 유다를 가른 회개와 은혜

엘 그레코의 「회개하는 성 베드로」에서, 눈물은 흐르지만 시선은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후회의 깊이보다 돌아섬의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의 요한복음 13장 설교는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를 죄의 크기보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찾는다. 두 제자의 이야기는 죄를 깨달은 사람이 자기 비난에 머물 것인지, 자신을 씻으시는 은혜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묻는다.

배반의 자리에서, 회개는 사랑을 향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다. 한 사람의 잘못을 가볍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 무겁게 놓아서는 이 대비의 중심에 닿을 수 없다. 설교가 주목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주님을 배반했으나, 베드로는 회개하며 돌아왔고 유다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회복을 가른 것은 실패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실패한 자신을 받아 주실 사랑을 알고 붙드는 믿음이었다. 베드로의 회개를 바라볼 때 죄의 심각성과 용서의 능력은 어느 한쪽도 지워져서는 안 된다.

유다에게도 자신이 저지른 죄를 깨닫는 고통은 있었다. 그러나 죄의 무게를 아는 것과 그 죄를 용서하실 분께 나아가는 것은 다르다. 잘못을 뉘우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판결만 되풀이한다면, 죄의식은 돌아갈 길을 가리는 벽이 될 수 있다. 회개는 죄의 무게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그 무게를 숨기지 않고 주님의 사랑 앞으로 가져가는 일이다. 베드로의 돌아섬은 배반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배반이 자기 삶의 마지막 말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설교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더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속삭이는 사단의 계략을 경계한다. 자신을 심하게 꾸짖는 모습이 언제나 깊은 회개를 뜻하지는 않는다. 자기를 미워하는 데 온 힘을 쓰는 동안 정작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일은 미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죄를 철저히 인정하되 주님의 사랑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나는 신학적 통찰이다. 주님께 돌아가는 마음에는 자신의 잘못을 슬퍼하는 정직함과, 용서를 베푸실 그분을 신뢰하는 소망이 함께 있다.

거듭난 마음에도 씻김의 은혜는 필요하다

그렇다면 베드로를 다시 돌아오게 한 믿음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까. 말씀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께로 시선을 옮긴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씻김을 거절하지만, 씻어 주지 않으면 주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씀을 듣고 온몸까지 씻어 달라고 청한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에게는 발을 씻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신다.

설교는 이 목욕을 중생, 곧 주님의 은혜로 죽고 다시 사는 거듭남으로 설명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 안에서 근본적인 씻김을 경험했기에, 무너진 뒤에도 그 사랑을 기억할 수 있었다. 발 씻김은 낮아져 섬기시는 모범인 동시에 죄인을 정결하게 하시는 구속의 표지다. 자신을 씻으시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신앙은 겉모습을 가꾸는 노력과 다른 깊이를 얻는다. 은혜는 죄인이 스스로 깨끗해진 뒤에 만나는 보상이 아니라, 죄인을 깨끗하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제자의 대비는 교회 밖의 누군가를 향한 경고이기 전에 신앙 공동체 안을 비추는 거울이다.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에 힘쓰는 모습만으로 마음의 중심까지 새로워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님 가까이에 있는 듯하면서도 실제 선택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이익을 앞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읽는 독자는 다른 사람의 중생을 판정하기보다, 자신이 주님의 사랑을 정말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주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도 이 뿌리를 밝힌다. 설교는 물의 씻김에서 죄에 대한 심판과 회개의 결단을, 성령의 역사에서 영혼 깊은 곳을 새롭게 하는 능력을 짚는다. 죄를 심각하게 여기는 태도는 필요하지만, 인간의 의지만으로 마음의 뿌리까지 바꿀 수는 없다.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신앙은 교리를 아는 데서 실제로 새롭게 사는 데로 나아간다.

이미 목욕했다는 말씀은 이후의 걸음에 더러움이 묻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도 연약함은 남아 있으며, 일상에서 범한 죄를 주님 앞에 내어놓는 발 씻김이 필요하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한다는 이유로 오늘의 잘못을 덮어 둔다면, 씻김의 뜻을 거꾸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사랑받았다는 확신은 죄를 감출 구실이 아니라, 숨기지 않고 다시 돌아갈 용기가 된다.

십자가 앞에서 믿음은 변명을 내려놓는다

돌아가는 길 한가운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다. 장재형 목사가 신앙의 기초로 강조하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는 중생이다. 용서의 소망은 자신을 위로하는 생각이 아니라, 주님께서 죄를 대속하셨다는 복음에 기대어 선다. 십자가를 지나지 않은 채 부활의 기쁨만 바라면, 자신을 부인하고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요청은 놓치기 쉽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이제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사신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 앞에서 믿음은 기존의 자아에 종교적 성취를 덧붙이는 일이 될 수 없다.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남들에게 부족해 보이는 몇 가지 습관만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자기 의와 고집이다. 설교가 말하는 거듭남은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 많아지는 것을 넘어, 실제 삶에서 그분이 주인이 되시는 변화다.

한때 강렬한 은혜를 경험했다는 기억도 오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일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신앙의 시간이 쌓일수록 익숙한 예배와 바쁜 사역이 내면의 메마름을 가려 줄 수 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낮추는 시간은 더 큰 종교적 성취를 준비하기보다,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마음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시간이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이익을 앞세우던 자리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을 따르도록 자신을 맡기는 일이다.

그래서 회개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신앙의 부수적인 일이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쌓아 온 체면이나 권위가 무너질까 두려워, 고백 대신 설명과 변명을 길게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먼저 필요한 말은 자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죄를 지었으니 불쌍히 여겨 달라는 간구다. 즉각적인 회개는 모든 감정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죄를 깨달은 자리에서 교만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첫걸음이다.

그 돌아섬에는 다시 같은 죄로 향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따른다. 슬퍼하고 고백한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같은 길을 걷는다면,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지 못한 말로 남는다. 날마다 자신을 점검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까닭은 용서를 가볍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다. 말씀과 기도는 자기 의지의 한계를 감추는 장식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힘을 얻는 자리다.

회복의 소망은 이웃을 돌보는 손이 된다

개인의 회개가 깊어질수록 공동체의 자리도 새롭게 보인다. 혼자 죄를 감추고 혼자 자신을 판단하면, 넘어짐을 드러내고 돌아오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설교는 서로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며 사랑으로 권면하는 영적 교제를 강조한다. 공동체는 죄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곳이 아니라, 죄 문제를 은혜 안에서 다루며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고백을 듣는 자리에서는 내가 받은 용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자신은 용서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의 넘어짐에는 회복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면, 받은 은혜가 이웃에게까지 흐르지 못한다. 함께 기도하고 권면하는 일은 그 사람의 회개를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죄를 버리고 주님께 돌아가려는 걸음을 홀로 내딛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 돌봄 속에서 고백은 혼자 견디던 침묵을 지나, 함께 회복을 구하는 기도가 된다.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십자가 복음의 열매는 용서받았다는 안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회개하고 돌아온 베드로에게 맡겨진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처럼, 회복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삶으로 이어진다.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에게 건네는 존재로 자라난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손길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실 뿐 아니라, 이제 누구를 향해 손을 내밀며 살아야 하는지도 보여 준다.

베드로와 유다를 따라가는 성경 묵상은 두 제자의 결말을 멀리서 평가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고백하지 않은 잘못, 놓지 못한 고집, 돌이키기를 미루고 있는 자리가 오늘 내 안에도 있는지 살피게 한다. 주님께 발을 내어 맡기는 사람은 자신의 더러움을 부정하지 않으며, 그것을 씻으시는 사랑도 부정하지 않는다. 오늘 나는 나를 향한 비난만 되풀이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씻으시는 주님께 돌아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가.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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