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고백한 첫 장면은, 인간이 방향을 잃을 때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길보다 귀일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장재형 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 설교가 붙드는 이사야 50장 4절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학자들의 혀"와 "학자들 같이 알아듣는 귀"는 말 잘하는 재능이나 지식의 장식이 아니라, 곤고한 자를 살리는 복음의 통로로 주어지는 은혜다. 이 말씀은 고난의 종 예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열리고,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선 교회가 어떤 말과 순종으로 시대를 섬겨야 하는지를 묻는다.
닫힌 귀를 깨우는 은혜의 아침
이사야 50장의 배경에는 바벨론 포로의 어둠이 놓여 있다. 그러나 본문이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포로라는 현실 자체보다, 그 현실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오해로 읽어버리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이혼 증서와 채주의 비유를 통해 자신이 백성을 내친 것이 아니며, 구원할 손이 짧아진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이 식은 데 있지 않고, 백성의 죄와 불순종, 그리고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는 닫힌 귀에 있었다.
이 설교가 오늘의 교회 앞에 세우는 거울도 여기에 있다. 환란의 시대를 지나며 사람들은 쉽게 환경을 탓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멀어진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말씀은 먼저 우리 안의 무감각을 묻는다. 하나님이 부르시는데도 듣지 못하고, 들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영적 포로의 더 깊은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사야 50장은 절망의 문서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바다를 마르게 하고 강을 사막이 되게 하시는 분으로 선포되며, 하늘을 흑암으로 덮는 심판의 이미지 속에서도 그 너머의 새 아침을 바라보게 하신다. 흑암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돌이키지 않는 백성을 흔들어 깨우는 엄중한 부르심일 수 있다. 그래서 회개는 패배자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아침마다 깨우친다"는 표현은 단순한 경건 습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앙의 아침은 해가 뜨는 시간이 아니라, 말씀이 다시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귀가 열리지 않으면 입술이 열려도 생명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믿음은 먼저 듣는 자리에서 시작되고, 회개는 닫힌 귀가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다시 떨리기 시작하는 사건이다.
학자들의 혀는 곤고한 자 곁에서 복음이 된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고백은 언어의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분명히 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혀가 지식을 뽐내는 도구가 아니라, 곤고한 자를 말로 도울 줄 알게 하는 은혜의 기관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의 말은 위로의 모양을 가질 수 있지만, 영혼을 일으키는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에서 온다. 성령과 말씀에 기대지 않는 말은 아무리 세련되어도 결국 능력 없는 말이 된다.
여기서 말의 문제는 곧 존재의 문제가 된다. 누구나 조언할 수 있고, 누구나 신앙의 언어를 흉내 낼 수 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사람의 자리까지 내려가 그 곁을 지키는 말은 먼저 말씀 앞에서 낮아진 사람에게서 나온다. 눈물 없이 건네는 말은 때로 더 깊은 외로움을 남기지만, 회개로 씻긴 말은 곤고한 영혼을 정죄하지 않고 소망 쪽으로 돌려세운다.
학자들의 혀는 또한 가르침의 사명과 연결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고, 그 명령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부르심이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말해야 할 복음은 차가운 설명이 아니라, 듣는 이의 곤고함을 헤아리며 그가 다시 하나님께 향하도록 돕는 말씀이어야 한다. 이때 지식은 사랑 안에서 낮아지고, 언어는 섬김의 자리에서 비로소 빛을 얻는다.
이런 말은 빠르지 않다. 먼저 듣고, 오래 머물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기 확신을 내려놓는 시간을 통과한다. 그래서 학자들의 혀는 말의 속도가 아니라 순종의 깊이로 분별된다. 곤고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해답보다, 하나님이 여전히 가까이 계신다는 진실을 품은 한마디일 때가 많다.
이사야의 고난의 종 예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예수님은 권위 있는 말씀으로 무지한 세상을 깨우치셨고, 죄인과 약한 자를 회복시키셨다. 그러나 그 말씀은 십자가 없는 영광의 언어가 아니었다. 사람을 살리는 혀는 고난을 피하지 않는 사랑의 몸에서 흘러나온다.
십자가를 지난 말씀이 성령의 시대를 연다
부활 이후 오순절 이전의 40일은 이 설교 안에서 중요한 묵상의 시간으로 제시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고, 제자들은 그 마지막 티칭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을 새롭게 이해하며 성령을 기다렸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7장에 이르는 고별설교의 흐름도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한 위로와 약속으로 이어진다. 보혜사 성령은 그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으로 약속된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의 입은 달라졌다. 특별한 학문으로 사람들을 압도하던 이들이 아니었지만, 성령의 능력 안에서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증인이 되었다. 사도행전 4장에서 학문 없는 평범한 사람들로 보이던 제자들이 담대히 말할 때 사람들은 놀랐다. 여기서 학자들의 혀는 특정한 신분의 언어가 아니라, 성령께 붙들린 교회의 언어가 된다.
로마서 10장이 말하듯 말씀은 멀리 있지 않고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다. 복음은 인간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 얻어내야 하는 비밀이 아니라, 이미 선포되고 믿어지며 고백되는 은혜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은 새로운 말을 꾸며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늘의 곤고함 속에서 살아 있는 언어로 전하는 사람이다. 닫힌 귀가 열리고 두려움에 묶인 입술이 풀릴 때, 교회는 환란의 시대 한가운데로 보냄 받은 공동체가 된다.
이 지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본질이다. 긴 역병의 시간 속에서도 가정과 공동체가 말씀으로 버텨야 한다는 권면은 그래서 가볍지 않다. 가정은 흩어진 시대에 마지막 보루처럼 남는 자리이며,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가 함께 귀를 열어야 할 작은 교회다. 말씀 앞에서 함께 깨어 있는 집은 세상의 흑암을 통과하면서도 소망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회개로 씻긴 교회가 소망을 말한다
말씀은 귀와 혀를 열지만, 그 은혜는 삶의 방향까지 바꾼다. 장재형 목사 설교는 물과 불의 이미지를 통해 회개와 정결의 길을 함께 바라본다. 눈물은 죄를 씻고, 성령의 불은 오래된 죄의 습성을 태운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는 은혜가 실제가 될 때, 교회의 말은 상처를 덧내는 소음이 아니라 누군가를 다시 일으키는 복음의 그릇이 된다.
교회의 사명도 이 자리에서 선명해진다. 곤고한 자를 돕는다는 것은 위로의 문장 몇 개를 건네는 일이 아니라, 가난하고 아픈 이들, 갇히고 눌린 이들을 향해 실제로 몸을 돌리는 일이다. 누가복음 4장 18절의 메시지처럼 복음은 자유와 회복을 말할 뿐 아니라, 그 방향으로 공동체를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학자들의 혀는 언제나 학자들의 귀와 함께 있어야 한다. 듣지 않는 교회는 바르게 말할 수 없고, 사랑 없이 말하는 교회는 진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를 함께 바라보는 균형도 여기에서 중요해진다. 죄를 향한 공의가 사라진 사랑은 얕아지고, 사랑 없는 공의는 사람을 소망으로 이끌지 못한다. 십자가는 이 둘이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고 완성하는 자리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과한 복음만이 회개를 정죄가 아니라 생명의 초대로 들리게 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로마서 5장의 흐름은 이 글의 마지막 숨결처럼 남는다. 영적 바벨론과 같은 시대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며, 아침마다 귀를 깨우시고 다시 말하게 하신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가 별과 같이 빛난다는 다니엘서의 약속처럼, 복음의 언어는 결국 한 영혼을 하나님께 돌려세우는 빛으로 남는다. 복음의 말은 먼저 말씀 앞에서 깨어난 사람의 침묵을 지나온다. 오늘 우리의 귀는 무엇을 향해 열려 있으며, 우리의 혀는 누구의 곤고함 곁에서 소망이 되고 있는가.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