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제 1. 십자가의 절망 속에서 선포된 "다 이루었다"의 의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인 "다 이루었다"(요 19:30)는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 tetelestai)'입니다. 이는 "완전히 지불되었다", "모든 것을 성취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마지막 선언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드러내는 가장 위대한 구원의 선언이라고 강조합니다.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십자가 위의 순간은 절망과 실패의 자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이제 더 이상 희망도, 출구도, 어떠한 성취도 기대하기 어려운 자리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기록자 요한은 이 처절한 죽음의 자리가 오히려 우주적 구원이 완성된 자리임을 힘주어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9장 28~30절의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일이 이루어진 줄 아시고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시편 69편 21절에 예언된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라는 구절을 성취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마취 성분이 섞인 쓸개 탄 포도주를 사람들이 드렸을 때 받지 않으셨습니다(마 27:34). 고통을 일부나마 무디게 해 줄 수 있는 그 음료를 거절하신 것은,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온전히 걸어가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예수님께서는 "내가 목마르다" 하시며 신 포도주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이미 모든 것이 성경대로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셨기에 주님의 고난이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중요한 점을 지적합니다. 주님이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해 보이는 순간에 선언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은, 인간적인 좌절과 패배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완성'임을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가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다"(마 27:50, 막 15:37, 눅 23:46)라고 요약한 순간을 구체적으로 "다 이루었다"라고 기록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수하신 사역이 '우연'이나 '비극'이 아닌,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에 의한 성취였음을 부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시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역의 최종 지점이 곧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자 죽음이지만, 동시에 구원과 승리의 자리였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가장 비참한 형벌을 받고 숨을 거두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온 우주를 향해 "사랑과 생명의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주목하면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절대적인 자기희생과 순종의 자리가 바로 십자가이며, 그곳에서 '다 이루었다'는 선언이 터져 나옴으로써 모든 구원 사역이 완결되었다"고 강조합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 역시, 제자들이 십자가 처형을 '절망'으로만 받아들였을 때의 실패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낙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큰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며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와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를 풀어주시며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해석해 주자, 그들의 눈이 열렸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결코 패배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증인이 됩니다.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라고 기록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머리를 숙였다'는 표현은 '베개에 머리를 대고 편히 눕는 것처럼'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더 이상 방황하거나 고통 가운데 계시지 않고, 모든 것을 완수한 후 아버지의 품에 안기시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극한의 고통과 인간적인 버림받음처럼 보이는 그 십자가 자리에, 사실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구원 역사의 완성이 담겨 있다는 역설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단순히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며,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고,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기를 낮추시고 가장 처절한 희생에 이르셨을 때, 그 자리가 곧 영광과 승리가 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처럼 십자가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의 자기계시"이며, 그리스도인이 이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소주제 2. 성경의 예언과 구원의 완성: 우슬초, 유월절 어린 양, 그리고 주님의 보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단순한 인간의 처형이나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예언된 대속 사역의 성취임을 보여 주는 중요한 상징 중 하나가 '우슬초'와 '유월절 어린 양'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기록된 유월절 사건은 애굽 땅의 장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그 무서운 재앙 속에서,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만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던 구원 사건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우슬초를 사용하여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발랐습니다(출 12:22). 요한복음 19장 29절에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라고 기록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과 상응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예식을 통해 구약의 유월절 양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라는 점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곧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을 면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인들을 사망에서 건져내는 구속의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고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이끄는" 능력 그 자체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는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 군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는 비극적 장면이지만, 동시에 이 사건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성경에서 물과 피는 각각 정결과 생명을 상징하는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은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완전한 사랑의 자기희생'을 시각화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가리켜 "죄인들을 위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당신을 쏟아 부으신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순히 기독교 교리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2장 20~25절에서 주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뵈러 왔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죽음을 통해 많은 생명을 낳는 한 알의 밀이 되실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어야 살고, 낮아져야 높아지는 역설적인 진리를 몸소 보여 주십니다. 이 원리는 곧 기독교의 구원론이기도 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역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죽고 다시 사는 영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장재형목사는 "죽음으로 생명을 얻는" 이 복음의 역설적 원리가,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포인트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우슬초가 상징하듯 죄인인 우리를 위해 흠 없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셨을 때, 그 보혈로 말미암아 이제 누구든지 주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결코 '패배'나 '좌절'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고 크신 뜻 안에서 예언대로, 계획대로 실현된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구원 사건"이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인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구약 시대부터 이어져 온 모든 제사 제도와 예언이 더 이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없을 만큼 완결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충분하며, 그 어떤 것도 추가로 '더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는 이들은 "죽음이 넘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고, "보혈을 자신의 내면에 바름으로써"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됩니다.
소주제 3. 낮아지심으로 높아지신 주님과 그 길을 따르는 자의 영광
장재형목사는 "진정한 영광은 십자가를 통한 영광"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철저한 낮아짐과 고난의 잔을 마시는 삶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십자가는 처절한 고난과 수치심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승리와 부활의 영광의 길이 됩니다. 예수님의 생애만 보아도,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셨고, 결국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셨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사례는, 인간적인 영광 추구가 어떻게 주님의 뜻과 어긋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그녀는 "나의 두 아들을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십자가의 잔, 곧 고난과 희생의 잔을 의미하는 이 질문에 진정 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낮아지는 길을 각오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후 이 여인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뒤, 십자가 자리에 있었던 네 명의 여인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인간의 야망이 아닌, 고난의 길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주님과 함께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주님은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5)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한 알의 밀' 비유와 맞닿아 있으며, 죽음을 통해 생명으로 들어가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바로 "낮아짐으로 높아지신 길"이고, "죽으심으로 부활하신 길"이며, "땅에서 들리심으로 만민을 이끄신 길"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실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야 진정한 영광에 참예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든 교만과 자기중심적 욕망이 무너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자기부정의 상징이자, 세속적 욕망과 죄성(罪性)이 철저하게 심판받는 자리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더욱 깊이 자리 잡는 공동체 안에서는 부패나 이기심이 설 자리가 없으며, 오직 희생과 사랑, 섬김이 넘치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신비이자 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원래 십자가형은 죄인을 거룩한 땅에 두지 않고, 땅과 분리하여 죽이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 '들림'의 자리를 통해 세상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이끄시는 생명의 길이 되셨습니다. 이 역설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과 능력이 선명히 드러납니다.
오늘날 우리도 삶의 여러 자리에서 "패배"나 "끝"처럼 보이는 고난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믿음의 눈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고, 패배가 아니라 승리라는 복음의 역설이 그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역설적 진리 안에 거할 때, 우리 역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주님처럼 '다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곧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사건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이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을 완전히 열어 놓으신 사랑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더 이상 보충할 것도, 기다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이미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길을 따라갈 때, 날마다 십자가가 보여주는 낮아짐과 자기희생의 삶을 살며, 궁극적으로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며, 또한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